2012년 4월 26일 목요일

[Karl-Henrich-Marx 가치론] Karl-Henrich-Marx 가치론

[Karl-Henrich-Marx 가치론] Karl-Henrich-Marx 가치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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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명 : *목차
1.서론
2.본론
3.결론
1.서론

“가치”는 일반적으로 사용가치와 교환가치로 이중적인 개념을 지니고 있다. 사용가치라는 것은 어떤 특정 재화의 효용을 나타내는 말이고, 교환가치는 그 특정 재화의 소유가 가져오는 다른 재화에 대한 구매력을 나타내는 말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가치”라는 말은 어디서부터 나온 말일까? 경제학에서 왜 “가치”라는 말이 나오게 되었고 또 왜 그것 때문에 경제학자들이 그렇게 고민하고 주장을 펼쳐 나오는 것일까? 그 시작은 가격에 있다고 많은 학자들은 주장하며 이론을 펼치고 있다. “가격이란 무엇인가? ” 라는 질문에 부딪힌 경제학자들이 그것을 설명하기 위해서 끌어온 사상적인 측면인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때문에 경제학자들은 이 문제로 인해 많은 괴롭힘을 받았을 것이다.
아담 스미스에 의하면 가격이란 임금, 지대, 이윤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말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 가격을 이루는 이 세 가지는 어떻게 무엇으로 결정되어 지는 것일까? 또 그것을 결정짓는 것은 또 무엇으로 결정되어 질까? 이러한 문제를 설명하기 위해서 나온 것이 ‘가치’라는 것이라고 생각되어진다. 이러한 ‘가치’는 두 가지로 주장되어지고 있는데 하나는 ‘효용가치’이고 나머지 하나는 ‘노동가치’이다.
우선 ‘효용 가치론’은 한계효용이라는 말로 설명이 되어지는데 이 한계효용이라는 것도 재화의 마지막 단위가 소비될 때 얻을 수 있는 것으로 설명을 한다. 이 한계 효용이라는 개념은 A. Smith에 의해서 처음으로 시작되어 져서 신고전학파로 넘어가면서 한계효용학파로 전달되어 발전한 가치론이다. 지금은 이 한계효용이라는 개념으로 설명되어 발전하게 된 효용 가치론적이 주장이 경제학의 주류를 이루고 있다. 그러나 효용 이론에 입각하여 가격이 결정된다고 보는 소비자 선택 이론에서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있는 선호가 사람들의 선택 행위의 핵심 문제로 되기 때문에 그 의미가 심리적으로 되고 또 모호해진다고 하는 까다로운 문제에 직면한다. 바로 이것 때문에 소비자 이론이 극히 추상적으로 되면서 현실 설명력을 잃게 되는 것이다.
또 하나의 가치론인 ‘노동 가치론’은 중상주의 시절의 W. Petty로부터 시작되어 A. Smith에서 D. Ricardo 그리고 K. Marx로 이어진 가치론이다. 이 노동가치론은 상품을 유통의 시각이 아니라 생산의 시각에서 바라본 것인데, 그렇게 생산된 상품의 가치는 노동의 투입량에 의해 측정되는 것이다. 이 노동가치론은 투하노동가치설과 지배노동가치설로 또 나뉘어 진다. 여기서 투하노동량이라 함은 상품의 생산에 사용-지출되어진 노동의 양을 말하는 것이고, 지배노동량이라 함은 그 상품으로써 그가 구입-교환-처분 할 수 있는 노동의 양을 말하는 것이다. 이중 지배노동가치설은 T. R. Malthus에 의해 계승되었다. 이 지배노동가치설은 문제가 있다는 이유로 T. R. Malthus 이후에 독립적으로 계승-발전되지 못하였고, 투하노동가치설은 D. Ricardo에 의해 계승되어 K. Marx로 이어져 가치론의 강력한 학설로 자리잡게 되었다.
Marx는 노동가치론의 과학적 요소들을 발전시켜서 모든 가치이론들을 비판해가며 자신의 노동 가치이론으로 대체시키는데 성공했다.
실로 마르크스의 노동가치론 경제학에 있어서 큰 혁명을 일으켰으며, 마르크스 이전의 아담 스미스나 리카도가 풀지 못했던 문제를 해결하게 되었다.
여기서 우리는 두 가치론 중에서 노동가치론에 대한 아담스미스에서 리카도 마르크스로 이어지는 노동가치론의 변화를 알아보고 마르크스의 노동가치론에 대해서 자세히 알아 보겠다.


2.본론
1) A. Smith의 가치론
아담 스미스는 가치론에 있어서 두 가치론이 공존한다고 생각했다. 어느 한쪽으로만 치우치게 된 것이 아니라 노동가치론과 효용가치론의 각 가치론 전통의 지적연원을 인정한 것이다. 여기서는 노동가치론의 비교이기 때문에 노동 가치론적인 측면에서만 바라보기로 하겠다. 우선 스미스는 노동가치론을 계급갈등을 강조하는 전통이라는데 지적연원을 두었다. 그리고 이기적이고 탐욕적인 동기가 개인적인 대립과 갈등을 야기한다고 보았다. 그는 나라의 부를 “그 사회의 모든 국민이 해마다 소비하는 생활 필수품과 편의품의 양”으로 규정하고 그 부의 원천이 “국민들의 연간 노동”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세상의 모든 부의 가치는 근본적으로 금이나 은에 의해서가 아니라 노동에 의해 결정된다”고 말하고, 어떤 상품이 가치를 지니려면 그것이 반드시 인간 노동의 산물이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더 나아가 “상품의 교환가치는 그것을 생산하는데 투입된 노동량에 의해 규정된다”고 했다. 아담 스미스는 상대가치 혹은 교환가치로서 가치문제를 제기한다. 아담 스미스는 사용가치와 교환가치를 대비하기 위해 ‘가치의 역설(Paradox of value)’ 혹은 ‘스미스의 역설(Smithian paradox)’을 제시한다. 이 ‘가치의 역설’ 문제는 스미스의 독창적인 비유가 아니라 플라톤, H. Grotius, J. Law, J. Harris 등이 이미 언급해 왔다. 스미스의 독창성은 이것을 근거로 교환가치의 규정에 있어서 사용가치 혹은 효용을 사상하고, 객관적 가치규정을 모색한데 있다. 가치론의 세 가지 과제로서 스미스는 가치의 진실한 척도, 혹은 가치의 실체는 무엇인가, 가치의 구성요소 시장가격과 자연가격의 차이를 들고 있다. 이 문제에 대해 설명하면서 스미스는 독자에게 인내와 주의를 환기한다.
노동 가치론적 해석에서는, 스미스에게 투하노동가치론과 지배노동가치론이 공존하고 있으며 스미스는 노동이 가치의 원천임을 분명히 인식했다고 한다. 과연 그러한지를 살펴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스미스가 사용하는 노동의 개념이 분명히 되어야 할 것이다. 스미스에게는 노동의 개념과 관련하여 ‘노동의 양’이라는 말과 ‘노동의 가치’라는 말이 나온다. ‘노동의 양’이라는 말은 물론 노동이 수량화될 수 있는 것으로서의 노동임을 말해준다. 그런데 ‘노동의 가치’라는 말을 어떻게 볼 것인가에 대해서는 많은 논란이 있어 왔다. 다음의 문구를 보자.

같은 양의 노동은 언제 어디서나 노동자에게는 같은 가치가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의 건강-체력-원기의 통상의 상태와 그의 기량 및 솜씨의 통상의 정도에 있어서는 그는 항상 그의 안락-행복-자유에서 동일한 부분을 포기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가 지불하는 가격은 그 대가로 받아들이는 재화의 양이 어떻든 간에 항상 동일할 것이다. 확실히 그것은 그러한 재화를 때로는 다량을 때로는 소량을 구매하겠지만, 변동하는 것은 그 재화들의 가치지 그 재화를 구매하는 노동의 가치는 아니다.

위의 서술에 대해 신고전파에서는 대체로 노동이란 비 효용 즉 일의 심리적 비용을 의미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고 본다. 위의 문구에서는 분명히 어떤 주관적인 성질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노동이 단지 주관적인 비 효용이라고만 한다면 같은 양의 노동이 언제 어디서나 노동자에게는 같은 가치가 있다고 할 수는 없다. ‘노동의 가치’란 말이 노동의 주관적인 측면을 보여주고 있기는 하나, 이것은 ‘노동량’이라는 수량화될 수 있는 측면과 결합되어서야 비로소 의미를 가질 수 있으며, 이것은 스미스의 노동의 개념이 갖는 양쪽 측면인 것이다.
스미스에게는 ‘대상화된 노동’이란 개념은 존재하지 않는다 『국부론』에는 어디에도 ‘상품에 포함되어 있는 노동’이란 표현은 없다. 앞에서도 말한 바와 같이 스미스의 노동의 개념은 노동량이라는 수량화될 수 있는 측면과 노동의 가치라는 주관적 측면이 일체화되어서야 비로소 파악될 수 있다. 우리는 이것을 잠정적으로 ‘활동으로서의 노동’ 혹은 ‘노동행위’ 라고 말해도 좋을 것 같다. 이 활동으로서의 노동 혹은 노동행위는 결코 대상화된 노동으로 전화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스미스에 있어서 노동량이란 ‘상품에 포함되어 있는 노동의 양’이 아니라, 항상 ‘상품의 생산에 고용되는 노동의 양’ 혹은 ‘그 상품이 지배할 수 있는 노동의 양’인 것이다. 그러므로 스미스에 있어서 노동의 양이란 곧 ‘현금단위의 수’란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노동의 가치란 노동행위에 수반하는 ‘수고’라는 주관적 측면을 나타내는 것이기 때문에, 화폐나 재화는 일정량의 ‘노동’을 포함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일정량의 ‘노동의 가치’를 포함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 주관적인 노동의 가치는, 노동량이라는 수량화되는 측면과 일체화되어 있는 것으로서, 이 수량화되는 측면의 규제에 묶여 있기 때문에 “같은 양의 노동은 언제 어디서나 노동자에게는 같은 가치”가 있는 것이다.

출처 : 해피레포트 자료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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